종이같고…자수같고…상식을 깨뜨린 도예들

입력 2023-04-23 17:45   수정 2023-04-24 00:29


서울 한남동 페이스갤러리 2층엔 하얀색 종이들이 벽에 걸려 있다. 가장자리는 살짝 구겨졌고, 군데군데 색이 바랜 곳도 있다. 어딜 보나 영락없는 종이 같지만 좀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깜짝 놀라게 된다. 종이가 아니라 두께 7㎜의 얇은 도자판이어서다. 중국을 대표하는 예술가 가운데 하나인 류젠화(61)의 작품, 그중에서도 ‘블랭크 페이퍼’(2009~2019) 연작들이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500개 백자 조각
그는 도예와 조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품들로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와 스위스 쿤스트뮤지엄 베른 등 유명 미술관에서 전시를 열어왔다. 2017년엔 ‘미술계 올림픽’으로 불리는 베네치아비엔날레에도 초청됐다. 그는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면서 입구에서부터 도예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1층 전시장 천장에 매달린 물방울 모양의 백자 조각 500개가 그렇다. 제목은 ‘어 유니파이드 코어’(2018)로 각기 다른 길이의 낚싯줄 끝에 매달린 조각들이 마치 하늘에서 쏟아지는 듯하다. 5년 전 제작한 작품이지만 류젠화는 페이스갤러리 공간에 맞춰 ‘그림을 그리듯’ 재설치했다. 그 옆에는 손글씨 모양의 ‘라인스’(2015~2019) 연작도 있다. ‘이게 정말 딱딱한 도자기인가’ 싶을 정도로 나선형 모양의 곡선을 섬세하게 구현해냈다.

류젠화의 독특한 작품 세계는 어린 시절부터 걸어온 길과 관련이 있다. 그는 ‘도자기의 도시’ 중국 경덕진에서 수습생으로 일했다. 14년간 전통 도자기를 제작하는 법을 배우며 기술을 익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릇과 병 만드는 일이 고리타분하다고 느껴졌다. 도자기에 대한 회의감이 떠나지 않았다. 조각으로 눈을 돌린 이유다. 하지만 도자는 그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도자를 떠나지 않으면서 도자에서 새로운 길을 찾았다. 서구의 모더니즘을 접목해 도예를 새롭게 해석해보자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류젠화가 만든 도자판은 제작 과정이 까다롭다. 워낙 얇기 때문이다. 평평한 도판에 그림을 그리는 중국 자판화의 도판보다 3㎜ 더 얇다. 류젠화는 “가마에 넣어서 구울 때 금이 가거나 깨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여서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29일까지 열린다.
그림처럼 벽에 펼쳐낸 도자기
도예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건 중국 작가뿐만이 아니다. 수천 년 역사의 도예를 이어가면서 동시에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신선하게 재해석하려는 시도는 국내 작가들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홍익대 미술대학 출신인 신동원 작가(51)는 다음달 12일까지 삼청동 아트파크에서 도자, 회화, 설치가 혼합된 독특한 작품을 선보인다. 아슬아슬 떨어질 듯한 주전자, 중력을 거스르는 물방울, 자유롭게 춤추는 끈…. 한 폭의 그림과 같은 그의 작품엔 캔버스가 필요 없다. 도자 조각을 납작하게 구워내 전시장 벽에 붙이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도자 위에는 한국 전통 자수에 등장하는 꽃무늬와 덴마크 왕실 도자기인 로얄 코펜하겐의 문양을 그려 동서양의 조화를 나타내기도 했다.

제주 서귀포시의 리조트 비오토피아에선 ‘도자회화’ 작가인 이승희(65)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백자와 청자를 평평하게 굽는 도자회화로 이름을 알린 작가다. 이번 전시에선 도자를 얇게 펴서 종이처럼 만든 작품을 선보였다. 류젠화가 하얀 ‘종이 백자’를 만들었다면, 이 작가는 여기에 황토색, 푸른색 등을 입혀 좀 더 동양적인 미를 강조했다. 전시는 6월 25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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